멸렬의 시대, 연재를 끊어내면서

쓸데 없는 행동은 아니지만 쓸모있는 진로를 위해 이 연재의 길을 잘라내기로 했다. 어차피 볼 사람은 어떤 길이라도 오고 가는, 이미 난 길은 훼손하지 않으나 결이 맞지 않은 사회 관계망 서비스같은 곳에 대한 지류를 떼어내는 것이다. 이건 어떤 결심도 절망도 아니다. 겨우 고안해낸, 어울리지 않는 위치와 방향을 정리하는 것이다. 모래톱에서 뽑아낸 바위를 산자락에 옮겨놓듯이 폐허가 된 고택에서 고송古松을 구해내는 그런, 그정도의 선택 다름 아니다.

짧은 해명을 더하자면 단상은 대부분 사건과 삶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대놓고 지껄이기 싫어서 문단과 단락, 단어 사이에 나만 아는 의미를 무덤 속에 몰래 도둑 안장하듯이 흩뿌려 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풀자면 내가 가본적도 없는 경북 군위에 대유해 글씨를 박은 ‘경북 군위군 의흥면에서 온 편지’는 내가 인터뷰했던 사망한 어떤 정치인에 관한 발언과 내용을 녹여놨으며, 여의도의 노을과 함께 가슴에 박아둔 ‘이력서를 두 장에서 한장으로 자르면서’는 과거 어떤 연애가 내게 힐난했던 내 이기심과 욕심, 표현 격식에 대한 고통이 쓰였다. 삶의 대부분은 행복에서 왔다가 고뇌와 도전을 거쳐서 물의 방향과 별의 속도로 지나가는데 내 뜻을 굳이 타자의 곡해 속으로 우겨넣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은.

육하원칙을 왜 싫어하겠는가, 내가. 몇가지 유형의 절삭기와 연마기, 피로와 단어의 더미를 쌓아놓고 자르는 일로 밥을 빌어먹는데. 그러나 이 계절보다 내 단어는 빠르고 생각은 보수적 계산기에 놓인 상태에서 이라도 하지 않으면 잠식은 의미보다 빠를 듯 해서 감정과 연장선을 여기서 끊어 버린다.

이 동네에는

이 동네에는 여전히 해가 높게 들지 않아서 서글픔이 아스팔트에 깔린다, 아프지 않게 조금씩 밀려간다. 내가 섰다 앉은 곳이 도로나 거리인 줄 알았는데 움직이는 벨트 위였다. 이 자락이 어디서 꺼질지, 나는 반대편에서도 어깨에 힘을 줘서 내가 버틸 수 있는 방향으로 말려 올라갈 때까지 기도할 수 있을까. 삶이 쉽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으나 이게 고난이라 생각할 필요도 없으니 고개를 돌려서 골목과 담벼락을 보다가 이게 꿈이 아닌 것을 깨닫는다. 다리를 세우고 하늘로 다니는 지하地下철 아래에는 개울이나 나지가 있고, 그것은 삶을 가르지 못한다. 우리의 가격도 그걸 기준으로 번화가와 우범지대로 갈리지 않으며 여전히 우리는 불火웅덩이를 찾아서 사랑에 떠는데.

이 동네에는 네가 살고 있다. 이 구석에는 내 사랑이 있다.

양파 카레를 끓이는 법

대로 끝에 언덕이 있어요. 당신은 그 너머에 있죠. 당신은 있는지요. 다시 말해서, 당신은 부존재不存在가 아닐까요. 오래된 고민이에요. 상자 안에는 누구도 없지만, 누군가는 양이나 된장찌개, 편지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울지도 끓지도 애절하지도 않은 틈바구니에서 나 홀로 기도하고 있을지요. 해넘이 없는 극점極點에서 나는 적도처럼 끓고 있지만, 그뿐이지요.

혜성인가요, 거기는. 규칙 있는 삶이라는 것은 부서진 잔해가 어디에나 마음대로 부유하는 틈에 감기는 규칙적으로 삶에 스미죠.

어제는 머리가 아팠어요, 두통이나 편두통이 아녔어요. 알게 됐지요, 시간의 폭을. 대로 끝 언덕 방향은 당신이 나타나는 쪽이 아니라는 사실은 감기 같은 우울감을 주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아요. 삶은 무작위는 아니니까.

내 친구 유선이 결혼한다

바람부는 향교 뜰에서 천리향이 난다

전주에는 없는 바다, 그렇지만 연무 내음이 나는 까닭은 우리 삶이 짠내에 찌들어도 향기랑 함께 뒹굴기 때문에

7년,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까지 이 줄넘기는 각자 멈출 줄 몰랐고 인터뷰어나 인터뷰이로 겹쳤던 포지티브 필름은 각자 어두운 우물부터 삶을 현상해서 이렇게 나타났다, 어눌한 적등이 빛을 발하면서 우리는 무대를 세웠지

그랬던 내 친구 유선이 결혼한다, “남의 얼굴에 책임질 자신이 없는 편집증 탓에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암묵적 동의’가 있어서 남긴 단체 사진같은 것도 조심스럽다”는 내게 “별 것이냐”며 호탕한 웃음 뿌리는 그가

가을 바람이 불 것이다, 개수대의 물을 비워내고 식탁을 뽀득뽀득 닦고 전주 완산 교동에 뜨끈한 밥을 먹으러 갈 때쯤이면

어느 정도냐면, 마라톤 대회 참가를 취소했다

경북 군위군 의흥면에서 온 편지

숲길을 달리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 인생은 한 방향으로 간다. 2000년 동안 누구도 거스를 수 없던 화살표, 우리는 점을 따라서, 때로 별빛이라고 부르던 과거를 제치면서 역사에 머리를 박았다.

삼성역 사거리에도 플라타너스가 넓게 드리웠는지, 모래 위에 쌓은 땅에는 지금쯤 낙엽이 제멋대로 휘날리려는지, 강바람을 보면 여전히 오른쪽 눈을 더 깊이 깜빡거리면서 눈물을 보이는지 궁금해. “삶은 물에서 와서 심해를 거쳐서 결국 불확실성에 몸 맡기게 된다”고, 네가 그랬잖니. 이렇게 떠나와 버렸네, 우리 미래는 숲에 담아둔 채.

“서울을 떠날 것이고, 일은 그만둘 것이야. 이 일은 정신을 갉아먹어, 시도 때도 없이 바빠서가 아니야. 시도 때도 없이 생각을 엮어야 하기 때문이지.”

풀이 눕는 틈에, 바람이 길을 잃는 사이에, 산등성이에서 뚝뚝 떨어져 산허리까지 굴러 내려온 개암을 보다가 이렇게 글을 짓는다. 글씨를 엮어서 마음을 보내. 복잡계에 든 너에게.

환상통幻想痛

내 벽에는 한 장의 종이가 붙어있다. 위쪽만 고정해 둔 탓에 바람에 잘도 날려서 덜렁덜렁 존재를 알리는 종이에는 사건번호와 처분일자가 박혀있고, 내 양심도 몇 줄 걸려 있다.

아주 짧은 글에도 어떤 거짓이 없게 하려는 다짐은 때때로 남들에게 오해가 된다. 사실에 대한 물음은 관계의 왜곡을 부르기도 하고 거짓에 대한 질문은 전쟁의 첨병으로 되돌아 올 때도 있다. 그러나 챙겨야 할 것을 아는 사람이 돼 가는 과정에서, 어제는 그제는 그끄제는 부끄럽게 살지 않았는지 여전히 되묻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운 적이, 다행히 아직 없었다. 부끄러웠다면 나는, 그랬다면 나는 부끄럽다는 말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괘씸한 새끼처럼 숨어 버렸을까.

타사의 어떤 후배가 내게 말했다, “칠 수 있을 때 치자”고. “이마저도 못하는 날이 올지, 어떻게 아느냐”고. 어떤 사실이나 답답한 상황에도 방어적으로, 섀우 복싱을 한 적 없는데, 나는. 그래도,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온 방식이 다르면서 때때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덜렁이는 결과를 보면서, 조금은 웃었다. 고마운 사람들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알까. 전세자금 이자 십 수만 원에도 벌벌 떠는, 속칭 ‘핫플레이스’라고 뜨는 동네에 살면서도 옥탑방이나 다를 바 없는 더위에 얼린 물병을 꼭 껴안고 자는. 도통 넉살이 없어서, 누가 사준 아이스 커피 한 잔, 오천 원 만 원 안팎 간식을 꼬박꼬박 기억하면서 되갚아야 성질이 풀리는. 후불교통비, 전기와 가스 요금을 내면서도 행복하다 생각하는, 그런.

피의 사건 종이를 보다가, 그래도 잘 지내왔다며 짧은 주말에 웃었다. 헛되이 살지 말자, 아직은.

무작위에서 부작위不作爲까지

빛을 독점하자 땅을 독점하자 고집과 삶의 길을 독점하자 노을을 독점하고, 시간을 독점하자 나눠져서 끊어져있는 이 삶에서 저 삶을 미분해서 부등식에 넣자, 등호等號가 차려져 있지 않은 차림에서

이 표본집단에 당신은 없다, 아니면 모집단일까 크레바스 사이 깊이는 얼마나 될까 우리 공전은 주기를 맞출 수 있을까 오래된 신앙은 잡념이 됐고 성서는 갈등이 됐다 부등호不等式의 큰 쪽은 창의 날을 세웠다, 논리로는 피할 수 없이

부단히 가벼운 것은 마음의 바다 위로 떠올라서 가라앉지 않았다, 그럴 수 없기에 그것은 사랑이거나 자연스러움이거나 또는 외로움이었다 갠지스 위에 떠가는 등불을 바라보듯이 오래된 바다는 계속 새 마음결을 가능하게 했다, 내가 잡지 못하였으나

포유류는 숨이 필요해서 심해로 숨어든 돌고래도 입을 뻐끔 하늘에 가져다 대야 했으나 반대인 녀석도 있었다, 평생 심해바닥에서 수면에 떠있는 불빛을 외계인이라고 여기면서

요하다, 사랑